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꿉니다.

 

다양성을 생각하는 참지성인, 최재천 교수

 

 

 

 

 

작년 ‘우리 들꽃 포토 에세이 공모전’ 시상식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진에는 장려상을 수상하러 단상에 올라온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에게 시상자가 무릎을 꿇고 상장을 전달하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어린이와 눈높이를 맞추던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울림을 안겨주었던 그는 제1 대 국립생태원장이자 사회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다. 한 장의 사진으로 단숨에 ‘공감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공모전 시상식 사진을 본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가 ‘눈높이’였습니다. 

 

Q. 눈높이를 맞추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어요. 어떻게 그런 포즈를 하시게 되었는지요?

 

의도한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습니다. 그때 상 받는 아이들이 저보다도 키가 큰 남고생들이 많았는데 그 뒤에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쭈뼛 서있어요. 키가 큰 학생들한테 상을 주다가 갑자기 아래쪽을 향해 주려니 기분이 살짝 묘했어요. 어린 아이한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상을 준다는 게, 마치 ‘내가 너에게 생을 내리노라.’ 하는 것 같았거든요. 이건 아니다 싶어 무릎을 꿇었죠. 막상 무릎을 꿇으니 눈높이가 딱 맞더라고요. 

 

Q. 눈높이를 맞추는 어른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 아이도 당황했을 것 같아요. 그때 아이가 무슨 말을 하던가요?

 

별다른 말은 없었어요. 아이도 처음엔 당황하더니 이내 배시시 웃었어요. ‘나랑 이렇게 눈높이를 맞춰준 거야?’ 라는 표정으로요. 그 때 사진이 어떻게 돌아다니더니 갑자기 제가 공감의 아이콘이 되어있던데요. 하하.

 

Q : 말씀하신 대로 정말 공감의 아이콘이 되셨어요.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있을 때 가능한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알면 사랑한다.”와도 맥이 닿는 것이고요. 교수님께서는 동물행동학자로서의 활동과 동시에 다양한 영역의 눈높이를 맞추는 활동을 하셨어요.

 

저는 과학자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생물학자입니다. 동물들의 사회를 연구하는 분야죠. 동물에는 당연히 인간도 포함되고요. 가끔 사람들이 제가 하는 일들을 보면서 외도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인간 즉,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이 사회를 구성해서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행태예요. 저의 연구대상인거죠. 동물들 간에 나타나는 환경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모든 것이 저의 학문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Q. 그러한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어떤 것인가요.

 

가장 드라마틱했던 건 호주제 폐지 활동이죠. 제가 어느 강연에서 “동물사회를 관찰해보니 동물사회에는 호주제라는 것이 없더라. 만약 있다면 호주는 당연히 암컷일 수밖에 없다”라는 지극히 과학적인 견해를 밝혔던 적이 있어요. 그날 이후로 전화를 아예 쓸 수 없을 정도로 공격을 많이 받았어요. 근데 그때 여성분들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몇 번 받았는데 대성통곡하시기는 분도 계셨고, 왜 이제야 나타나신 거냐 하는 분도 계셨죠. 호주제 문제가 여성들에게는 어마어마하게 심각한 문제인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어요. 그걸 계기로 ‘에라 모르겠다’ 는 심정으로 호주제 폐지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강연하고 글을 썼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헌법재판소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어요. 출두해서 변론하라는 내용이었죠. 사실 저는 그 편지가 굉장히 반가웠어요. 최고 법률기관이 과학자의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 굉장히 상징적인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기꺼이 헌법재판소로 갔습니다.

 

Q. 그게 호주제 폐지에 결정적이었죠? 남성 최초로 여성운동상도 받으셨고요.

 

9회 말에 끝내기 안타를 친 거죠 거의. 그 재판 이후에 호주제 위헌 판정이 나오고 국회에서 새로운 법안이 나왔으니까요. 사실, 아주 긴 싸움에 제가 안타 하나 친 건데 마치 일등공신처럼 나오는 것 같긴 합니다. 우리나라 여성계에서는 오랜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과학자가 나타나서 객관성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던진 덕분에 경기가 끝났다고 평가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 상을 주신 게 아닐까요.

 

Q. 교수님처럼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지식인이라고 생각합니다. 2013년에는 제인구달박사와 함께 생명다양성재단을 설립하셨지요. 환경단체와 비교해보면 그곳에서 하는 활동이 굉장히 다양한 것 같았어요.

 

저희는 환경활동을 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생명다양성재단은 자연과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 예술 활동을 펼치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기업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곳이에요. 재단 이름을 생물다양성재단이라고 하면 멸종위기종만 보호하는 곳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생물’ 대신 ‘생명’을 집어넣었어요. 단어 하나만 바꿨는데도 다들 폭 넓은 의미로 받아들여주시더라고요. 설립 당시에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께서도 많은 지원을 해 주셨어요. 

 

 

Q : 재단 이름이 생명다양성재단이잖아요.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다양성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캐나다 몬트리올을 몇 번 간 적이 있는데요. 한번은 호텔방에서 TV를 틀었는데, 트뤼도 총리가 내각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그 전에 신문에서 트뤼도 총리가 내각에 절반을 여성들로 구성하겠다는 공약을 본적이 있었어요. 그 공약 지켰는지 어디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보는데 진짜 38명 중에 19명이 여성이었어요. 기자가 총리에게 왜 여성을 절반으로 채웠냐고 하니까 총리가 이런 말을 했어요. “2015년이잖아요” 라고요. 정말 멋있죠? 제가 그 이국땅에 시차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TV로 남의 나라 내각 임명받는걸 보면서 펑펑 울었어요. 너무 아름다웠으니까요. 이게 바로 다양성이거든요. 평생 자연의 다양성을 연구하며 기가 막힌 아름다운 자연은 다 봤는데, 인간의 다양성의 결정체를 봤을 때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Q : 교수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아름다운 사회란 다양성이 존중되고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결국 중요한건 교육입니다. 우리사회는 갈등으로 너무 얼룩져있어요. 하지만 갈등 자체를 혐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갈등이 갈등으로 들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들어났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를 교육하는 것이 중요한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체제에만 놓여 있다가는 이 사회가 제 기능을 하기 어려워요. 동물사회도 마찬가지에요. 자연 어디를 둘러봐도 결국 망하고 멸종하는 곳은 짝이 없는 곳, 손을 못 잡아서 밀리는 곳이에요. 손잡은 자들이 미처 손잡지 못한 자들을 제거하는 게 자연이죠. 우리 사회는 손잡으려는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을 사람들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어요.

사실 저는 굉장히 우리 사회에 굉장히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며 살아요. 우리 국민들은 머리로 이해가 딱 되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건 엄청 빠르잖아요? 올바른 교육이 이뤄지다보면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사회는 큰 도약을 할 거라 믿습니다.

 

Q : 우리 사회를 향한 교수님의 믿음이 우리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희망의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요?

 

다른 생명과 손잡고 함께 돕고 사는 사람이 참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을 저는 공생을 뜻하는 ‘symbiosis’와 호모 사피우스를 합쳐 ‘호모 심비우스’라고 불어요. 손잡고 함께 사는 게 결국은 이기는 거니까요.

 

 

 

글/사진: 교보교육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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