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참사람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 믿습니다.

공동체의 삶에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키는 조두리 선생님

 


  집에 있는 책을 모아 동네 아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을 열었던 독서 지도 선생님. 어느새 한적한 곳으로 삶의 터를 옮기시곤, 동네 어귀마다 꽃을 심으며 온 동네를 내 집처럼 아름답게 가꾸던 사람. 그녀가 걸어온 자취에는 소박한 감동과 아름다움이 꽃처럼 피어났습니다. 공동체의 삶에 따듯한 변화를 불러일으키시는 분,  ‘내가 만난 참사람’ 에세이 1차 공모전 최우수작인 ‘초록이 엄마 조두리’ 속 주인공 조두리 선생님을 서울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직접 뵙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김주선님께서 쓰신 에세이가 공모전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되면서 작품 속 참사람 주인공인 선생님을 이 자리에 모시게 되었어요.”

 

Q. 이렇게 참사람 에세이 주인공으로서 인터뷰 이야기를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처음 주선씨가 연락이 와서는, 제가 예전에 진돗개를 길렀는데 그거에 대해서 자꾸 물어보고 우리 동네에 심은 꽃 이름을 물어봐요. 그래서 내가 왜 그러느냐고 그랬더니 글을 쓴다고 그러더라고요. 우리가 가끔 모임에서 글을 쓰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건가보다 생각을 했는데 한두 달 지나서 이렇게 선발됐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놀랐죠. 그러면서 인터뷰를 해야 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해야 하면 당연히 해야 하지 않겠냐 생각을 했죠. 그런데 막상 메일로 인터뷰지를 받으니까 그냥 평범한 삶을 사는 주부인데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막막하더라고요. 

 

Q. 에세이를 써주신 김주선님과는 어떤 관계이신지 궁금해요.

  부모교육단체인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라는, 학교 안 학부모 교육하고 교사 연수하는 평생교육원에서 그 분이 사무총장이고 저는 독서 지도 강사였죠. 그렇게 알게 됐는데 아마 에세이를 쓰기 바로 

전에 우리 집에 다녀가서 쓰기가 좋았던 것 같아요. 

 

Q. 이런 자리가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으실 텐데, 흔쾌히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에세이 제목이 ‘초록이 엄마 조두리’였어요. 초록이는 지금 잘 지내나요? 

  봄이는 15년 된 훌륭한 진돗개였는데 지난 1월에 떠나보냈어요. 강아지가 일곱 마리가 태어났는데 초록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부정교합이라서 젖을 못 빨고 씹어 먹지도 못하고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관리를 진짜 많이 했죠. 다행히 지금은 아주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요. 

 



Q. 이사 가시기 전에 사셨던 곳에서 동네 아이들을 위해 ‘나무와 새’라고 하는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셨다고 들었어요. 도서관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제가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어요. 저의 삶은 부모님이 낳아주셨고 책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줬어요. 독서가 나한테는 종교나 마찬가지이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건데, 내 아이도 책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독서교육을 하게 됐는데 그러다보니까 남의 아이까지 하게 된 거예요. 문화센터도 다니고 학교도 다니고 학원도 다니다보니까 독서도 다른 교과목과 같이 과외더라고요. 독서는 그러면 안 되잖아요. 책을 읽는다는 거는 책을 고르는, 호기심에서부터 시작해야하는 게 아닌가. 책꽂이에 아이들이 매달려서 책을 찾고, 빌려가고 와서 공부도 하며 노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마당을 흙 마당으로 그냥 뒀거든요. 아이들이 오면 모두 그 흙 마당에서 놀아요. 그림을 그리고 말차기, 비석치기 같은 거 하면서 뛰어놀더라고요. 아이들에게 공간을 안 줘서 그렇지 아이들은 공간만 있으면 그렇게 알아서 놀아요. 학교를 마치면 빨리 들어오려고 서로 달리기를 하면서 달려와요, 그런 공간이었어요. 

아이들이 오고 싶은 곳. 독서라는 게 영어나 수학 같이 과목이 아니라 재밌는 책을 잠깐 보면서 놀 수 있는 놀이 중 하나가 되는. 나는 그게 아이들한테 씨가 뿌려져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Q. 도서관을 운영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으신지요?

  하나만 예를 들면, 아버지가 경찰인 한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는 말을 못해요. 말을 시키면 얼굴이 백짓장처럼 새하얘지면서 부들부들 떨어요. 아이들이 두 권의 책을 빌려 가면 스토리텔링을 해요. 보통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인데 저희는 아이들이 선생님께 들려주는, 거꾸로의 형식을 했어요. 오면 아이가 선생님께 자기가 읽은 책을 이야기를 해줘요. 그런데 이 아이가 처음에는 부들부들 떨면서 ‘그게요’, ‘그러니까요’ 이랬어요. 

  스토리텔링을 할 때 선생님은 온전히 몰입해서 들어줘야 해요. 그게 아니면 체크하는 게 되잖아요. 그게 아니라 들려주는 걸 들어주는 형식이 돼야 하잖아요. 선생님은 볼펜 녹음기로 녹음을 하고 아무 것도 기억하려 하지 않고 듣기만 해요. 듣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질문을 해요. 똑같은 책을 열 명이 읽으면 시작하는 말이 다 다른 거예요. 어떤 아이는 인물을 먼저 말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중간 부분부터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는 발단 전개 절정 딱 맞춰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 아이를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얘는 말을 못하니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죠. 그런데 몇 년이 지났는데 ‘제가요 이렇게 이렇게 말을 하고 싶은데 잘 안 돼요’라는 거예요. 그걸 네가 아냐고 물어봤더니 안다는 거예요. 몇 년이 지나서는 얘가 학교 마치면 정말 막 달려와서 너무나 씩씩하게 말을 하고. 그런 경험들이 참 많아요. 

  우리가 추측하기로는 스토리텔링뿐만 아니라 마인드맵이나 브레인스토밍 이런 것도 해봤을 때 ‘두려움’, ‘무섭다’ 이런 단어를 많이 써요. 아버지를 굉장히 무서워하고. 우리가 심리 상담이나 가족 상담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는 없었지만 아이가 아버지를 엄청나게 무서워한다는 건 느꼈어요. 그래서 저희가 생각하기에는 이 아이가 뭐라고 말을 했을 때 누군가 귀담아 들어주고 혼이 나지 않는다는 거, 교감이 된다는 거, 이게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 걸치면서 아이에게 용기를 주지 않았을까, 이 기간이 쌓이면서 아이가 변화하지 않았나. 이런 아이들이 더러 있어요. 그게 ‘나무와 새’의 보람이었죠. 증거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직접 봤으니까. 스토리텔링이 큰 의미가 있었죠. 책뿐만 아니라 소통과 교감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Q. 10년 동안이나 운영하시던 도서관을 접고 지금 살고 계시는 울산 화봉마을로 이사를 가시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가 열정이 좀 넘쳐요. 지금 57세인데 어제도 이전부터 하던 독서모임을 하고 오고. 일을 시작하면서 정말 열정적으로 했어요. 부모교육도 하고 성인교육도 하고 아이들 교육도 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저한테 질문을 했어요. 그런데 그 질문내용은 알아듣겠는데 속으로 ‘쟤가 왜 저런 걸 나한테 물어보지?’ 싶은 거예요. 질문하는 그 아이의 마음이 얼른 파악되지 않는 거예요. 밤에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여기에 몰입하는 열정이 떨어진 게 아닌가, 내가 그만해야 될 때가 된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 게 50살 무렵이에요. 제가 더 할 수 있지만 하면 사치, 돈벌이 이런 게 될 것 같아서 2년 정도 준비를 하다가 서서히 정리를 하고 붙잡을 때 떠났어요.

  울산으로 가게 된 건, 그 이전부터 남편이 울산에 있었어요. 아이들이 크니까 서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결국 남편 따라 울산에 가게 된 거죠. 장소와 대상만 다를 뿐이지 그곳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은 할 수 있으니까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다 싶기도 했어요. 

▲ 화봉마을 길가의 사진. 조두리씨가 손수 심은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

 

Q. 화봉마을로 오셔서는 집 마당뿐만 아니라 온 동네가 꽃으로 물들 만큼 마을 곳곳에 꽃을 많이 심으셨다고 들었어요. 

  저 뿐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 꽃을 좋아해요.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분들은 내 집 울타리 안에 심는다면 저는 길에 다가 심는 거죠. 길에는 땅이 있으니까 심는 거예요. 동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을 하잖아요. ‘이상한 사람이다, 자기 돈으로 사서 씨만 뿌리는 게 아니라 모종도 사와서 심고. 왜 저런 짓을 하나.’ 이웃이 하루는 물어보더라고요, “왜 이런 일을 하고 싶게 됐냐.” 저도 모르죠.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책에서 가족이 죽고 혼자 사는 주인공 할아버지가 황무지에 살면서 매일 도토리를 백 개씩 심어요. 작가가 거기를 여행 가서 보고 따라 다니면서 할아버지께 물어봐요, 여기가 누구 땅이냐고.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모른다고 그래요. “누구 땅이면 어떠냐. 있으니까 심는 거다.” 그게 저한테 상당히 감동적이었나봐요. 그 때 이 책이 생각이 나는 거예요. <나무를 심는 사람> 책이 나한테 씨앗을 뿌렸구나. 빈 공간, 황폐한 공간이 있으면 꽃을 심으면 좋겠다,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이런 생각이 내 안에서 싹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요. 그 이웃이 물어봤을 때 저도 처음 그 생각이 들었어요. 마을 사람들도 같이 보기 좋고 마을도 예뻐진다는 의미에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Q. 어쩌면 선생님께서는 마을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마을활동가 역할을 하시고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옆집에 사는 사람과 반갑게 인사하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함께 나누는 모습이 요새는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나무와 새’를 하기 전에는 아파트에 살았어요. 아파트에 살 때 제가 그 엘리베이터 안에 종이접기로 액자를 만들어 좋은 글귀를 하나씩 써서 숨어 있다가 아무도 없을 때 붙여놨는데요. 몇 개월이 지나고 누가 우리 집 대문에다가 “그렇게 좋은 글귀를 붙여줘서 너무 고맙다. 그리고 나는 10층 몇 호에 누구다. 한번 놀러오세요.”라고 포스트잇을 써서 붙여놓은 거예요. 정말 놀랐죠. 그런 경험을 보면 ‘길이 없으면 내가 길을 낸다.’라는 말이 있듯이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고 먼저 인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하기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내가 먼저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먼저 무언가를 했는데 그게 안 될 경우에는 사람은 다 다양하니깐 그 사람한테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저도 예전에는 먼저 다가가기 어려워했어요. 어릴 때 썩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안 자랐어요. 그래서 제가 특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 마음이 아픈 사람한테 이렇게 먼저 다가갈 줄 알게 된 이유는 제가 그런 환경에 있어봤기 때문이에요. 그런 나를 변화시킨 게 책이죠. 그게 어느 한 번의 계기, 한 번의 훈화로 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이렇게 되풀이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져서 오늘의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었죠.  

 

Q. 그렇다면 책이 변화를 주었다고 하셨는데, 변화를 준 책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이죠?

  명상록이요. 명상록은 후세 사람들이 붙인 제목이고, 아우렐리우스가 쓴 일기여서 독자에게 읽히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글이라 다른 책에 비해 진솔한 내용입니다. 명상록을 지금까지 20번 이상, 지금은 상반기, 후반기로 해서 일 년에 두 번씩 꼭 읽어요. 이렇게 꼭 읽는 이유는 아우렐리우스가 180년까지(180년에 사망할 때까지 20여 년 동안) 황제였는데 그 당시에 로마의 황제는 철인이잖아요. 그런데 로마의 황제의 고민이 내 고민하고 똑같은 거예요. 누구나 나하고 똑같고 내가 못난이가 아니라는 게 너무나 위안이 되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가 ‘노자’죠. 노자는 제 인생의 스승이에요. 좋은 책은 적어도 세 번 이상은 읽어보는 게 좋아요. 세 번만 읽으면 읽기 전과 후가 달라질 거예요. 그리고 ‘노자’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불상현, 사민부쟁(不尙賢, 使民不爭)’이라는 거예요. 이게 해석이 여러 가진데 무슨 뜻이냐면 ‘어질고 훌륭한 사람을 너무 떠받들지 말라. 그래야지만 백성이 다투지 않는다.’ 너무 어떤 한 사람을 우상처럼 떠받들면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고 싶어서 나도 떠받들리고 싶어서 경쟁을 하게 되고 거짓을 하게 된다는 거죠. 그리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같은 경우에는 너무나 많아서 이루 다 말을 할 수가 없지만 지금 생각나는 구절은 ‘신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면 되지 이웃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라.’ ‘신’이라고 하는 것은 종교에서 말하는 어느 누구의 신이 아니라 우주의 섭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섭리에 맞도록 살고 그거를 너의 양심을 알지 않느냐. 내 양심에 맞게, 섭리에 맞게 행동을 하면 된 것이지 이웃이 나를 오해를 하고 이웃이 내 마음을 몰라주고 이웃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그런 거에 신경 쓰지 말라. 이 구절을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Q. 이렇게 이웃들과 잘 지내고 계신데요. 선생님이 바라시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저의 세계관은 ‘우주의 일원으로 공동체에 유익한 삶’이라는 것이고 저의 인생관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고,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알아서 내가 뭘 할 수 있는 역할을 그 시간에 맞게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제가 동네에서 쓰레기를 주어요. 우리 집 다음으로는 등산로가 있어서 등산 하는 사람들이 차를 많이 주차를 하고 물티슈 같은 휴지도 많이 버려요. 그래서 집게를 사서 쓰레기를 줍는데, 처음에는 50L, 100L짜리 한 봉지가 가득 찬적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20L짜리 반도 안차요. 처음에는 좀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쓰레기를 몰래 주울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환한 낮에 줍는데 누군가 지나가면서 나를 힐끗힐끗 보는 거예요. 그 순간에 좀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그러다가 생각한 게 뭐냐면 ‘아 저 사람은 내가 줍는 걸 봤으니깐, 이제 여기에 휴지를 안 버릴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후부터는 좀 많다 싶으면 개의치 않고 나가서 쓰레기를 주워요. 그런 거처럼 내가 사심 없이 무언가를 하면 그걸 본 사람들은 각자가 생각을 할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고 내 역할을 알고 때에 맞게 하면 그것이 하나가 씨앗이 되어서 그걸 보고 누구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너무 겁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싸우고 다투고 욕심내고 하는 게 그 저변에는 겁이 나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어요. 있는 그대로의 내가 겁이 나니깐 뭔가 거짓으로 좀 포장하고 더 많이 가지고 싶고 그러다 보니 이웃을 해치게 되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게 되고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을 해요. 독서 모임에서 이런 얘기들을 해요. 우리가 이렇게 좋은 책을 많이 읽는데, 왜 인간이 안 달라지나. 내가 이렇게 잘 하려고 하는데 왜 안 되나, 왜 좋게 살려고 하는데 왜 안 되나. 씨앗이 안 되게 돼있는데 당연히 안 되죠. 그래서 그 뿌리가 아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두려워서 부끄러워서 그렇다고 생각을 해요. 누구나 그게 없으면 차츰차츰 이렇게 좋아지지 않나 생각을 해요.

 

Q. 오늘 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웃 분들과 함께 참 정답게 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요?

  ‘어떡하지 이거. 나는 뭐라고 쓰지.’ 한 2~30분을 방황하다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았어요. ‘어떻게 써야 된다’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한 게 내가 만나고 싶은 참사람이 어떤 사람이지? ‘내가 생각하는’이 아니라 ‘내가 만나고 싶은’ 참사람이 어떤 사람이지? 생각을 해보다 보니깐 모든 생각은 내가 아는 범위에서 되잖아. 그러니깐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참사람인 것 같은 사람을 떠올릴 거 아니에요? 해보니깐 완벽한 참사람은 한 명도 없는 거예요. 그리고 모두가 어떤 부분에서는 참사람인 부분이 또 있었어요. 누구나 참사람을 보면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이미 참사람이라는 씨앗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게 내 주변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리다 보니깐 모두가 어느 부분에서는 참사람인 부분을 다 갖고 있었어요. 아마 잘 생각해보시면 정말 다 있을 거예요.

 

 

글 : 참사람 서포터즈 김소정/장소현

사진 : 교보교육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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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고 보니 모두 다 참사람.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조두리 선생님.
  • 김경일
  • 18/09/2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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